#4. 우이도, 꿈같은 2박 3일

관리자
발행일 2024-08-06 조회수 25

목포환경운동연합_<글짓는사람들>


 


#4. 우이도, 꿈같은 2박3일


올해는 우이도에 3번 가게 되었다. 새해 첫날 지인의 초대로 동소우이도 옛 분교였던 집에 방문했다. 겨울에는 바람과 파도가 심해 배가 뜨지 않았다. 하루 더 머물면서 진리마을 성황당에도 올라가고, 문순득 생가, 손암 정약전 유배 적거지와 서당터, 띠밭 너머 언덕길을 걸었다. 섬에 묶인 몸과 마음이 답답한 것이 아니라, 오지에 와 있는 것처럼 묘한 매력과 자유로움을 느꼈다. 자연을 이길 수 없는 문명으로부터 멀어진 것만 같았다.


태풍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둑과 난간을 휩쓸고 가고, 인간이 만든 시멘트 길은 다시 흙이 되고 우거진 숲과 풀이 길을 지웠다. 겨울이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고 나무는 가지만 남았다. 주변을 뒹구는 쓰레기와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봄이 되고 여름이 되면 또 다른 얼굴을 내밀 것을 상상했다. 바닷가로 밀려오는 쓰레기는 어디를 가나 문제였다.


그 후 6월 말 극단갯돌에서 주최한 <홍어 장수 문순득>과 함께 신안국제문페스타에 참여하였다. 비금, 도초, 우이도에 펼쳐진 문화와 역사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로드스콜라 여행은 여러 사람과 함께 풍물의 울림과 제의, 헌가, 섬 밥상, 달뜬몰랑길을 걷는 기분도 좋았다. 그날은 바람이 불고 비가 와서 오후 배가 뜨지 않을까 봐 조마조마하며 마음 졸였던 기억이 난다.



<동소우이도에서 성촌으로 가는 배 타기 전, 안개 낀 바다>


 


올여름 2박 3일, 다시 우이도를 찾았다. 미역을 채취하는 기간이라 섬사람들은 조금 바빴다. 이번엔 안개가 짙어 아침 배가 뜨지 않았다. 진리로 가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진리에서 돈목으로 걸어가는 길이 험해서 갈 수 없다는 정보를 들었다. 결국, 우리는 성촌으로 직접 고기잡이배를 타고 가는 길을 택했다. 안개를 뚫고 조금 나가니까 신비로운 바다가 펼쳐졌다. 또 다른 길과 선택의 결과, 안개는 걷히고 바다는 호수 같았다. 그러다가 또 파도와 해무에 휩싸이는 바다는 버라이어티의 연속이었다. 몽환적이면서도 은혜로운 섬이라니, 우리는 환호하면서도 안전과 만사형통을 바랐다.


배를 타고 30여 분 만에 성촌 선착장에 도착했다. 이생진 시인의 시비가 반겨주었다.


“성촌마을은/ 돈목마을보다 더 야위었다/ 교회도 없고 폐교도 없다/ 나는 불쑥 외로움을 자랑한다”


야위었다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민박집에 짐을 풀자마자 땡볕을 뚫고 성촌 해변으로 달려갔다. 돈목해수욕장에서 보면 풍성사구의 뒤편이 있는 곳이다. 아무도 없는 여름 바닷가에서 한숙 샘과 나는 성촌 해변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띠밭 너머까지 걸어갈 기세였다.


물때가 맞지 않아 최대한 가까이 가 보았다. 가는 길에 모래가 산을 넘어와 사구가 된 모습을 보았다. 예전에는 반대편으로 넘어갈 수 있었는지, 현재는 보호구역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아름다운 풍경에도 눈에 거슬리는 것은 쓰레기들이었다. 국립공원이라는데 쓰레기는 아주 많았다. 섬에서는 치워도 치워도 밀려오는 쓰레기들을 어떻게 감당할까? 걱정스러웠다. 우리가 섬에 버리고 오는 것도 문제지만, 밀려오는 쓰레기 또한 만만치 않았다.




<우이도 성촌마을 선착장, 이생진 시인 시비 앞>


성촌 해변에 뒹굴고 쌓인 쓰레기들을 뒤로하고 바다는 더없이 아름다웠다. 신발을 벗고 밀려오는 파도를 느끼고 발바닥에 간질이는 모래의 촉감을 느꼈다. 하늘과 바다의 색깔이 푸르러 에메랄드 바다가 되었다. 한숙샘과 나는 오후 배로 들어오는 두 사람을 기다리며 모래사장 끝까지 걸어가 보았다. 조금 더 가면 진리에서 바라봤던 띠밭 너머였다. 밀물인지 썰물인지 알 수 없어 그곳에 계속 있을 수가 없었다. 띠밭 너머를 마음껏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성촌 해변에 쌓인 쓰레기들>



<앗 숨이 막혀, 돌 틈에 끼어서 못 나와요>


오후 4시가 다 되어 배가 도착했다. 환경연합에서 산 텐트를 들고 도착한 윤호샘은 평상에 짐을 풀자마자 바다로 달려갔다. 그러니까 뜨거운 햇볕에 지친 우리가 잠시 쉬고 있는 사이, 윤호샘은 혼자서 띠밭 너머 해변까지 다녀왔다. 그제야 낮에 본 바다가 썰물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늦은 시간, 늦은 저녁을 먹고 다시 해변을 걸었다. 다들 바닷가에 누워 밤하늘을 별을 바라보았다. 아침에 들어보니 윤호샘은 텐트에서 파도 소리와 함께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별’을 들으며 잠들었다고 했다.


아침 5시에 만나 해변을 걸었다. 7시 20분 배가 안개로 뜨지 않았다. 날씨가 이리도 화창한데 배가 뜨지 않다니. 여름은 안개, 겨울엔 파도가 문제였다. 우이도 섬은 일 년 중 3분의 1은 배가 뜨지 않고 하늘에 뜻에 맡긴다고 했다. 어찌할 수 없다. 급히 목포 일정을 변경하고 오후 3시까지 섬에서 잘 지내야 한다. 돈목해수욕장을 지나 도리산을 등반하기로 하였다. 그리니까 우이도 본섬은 진리, 돈목, 성촌, 예리가 있는 곳이다. 물때가 맞으면 해안을 돌고, 산을 넘으면 배를 타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길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여행자가 모험하기엔 위험이 뒤따른다. 적어도 한 일주일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쉼과 함께 여유를 부려도 좋을 섬이다.


빨간 지붕의 돈목마을은 더 크고 골목길도 예뻤다. 이생진 시인이 “성촌은 돈목마을보다 야위었다”라는 시를 왜 썼는지를 알겠다. 돈목마을은 집도 더 많고, 교회도 있고, 고향슈퍼도 있다. 도리산에 올라가는 길은 해무와 함께였는데 정상에 올랐을 때는 작열하는 땡볕에 쓰러질 지경이었다. 잠시 근처 나무 아래에서 쉬다 다시 도리산 정상에 다시 가 보았다. 이전에 보았던 풍경과는 또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역시 힘들어도 몸은 움직여야 한다.




<도리산 정상 아래에서 쉼, 더워 죽을 것 같어~ 얼음을 머리에 인 경애, 바라보는 한숙>




<도리산 정상에서 경애, 한숙~ 잠자리도 기뻐서 춤을 추네>


해무는 모두 걷히고 눈 앞에 펼쳐진 우이도 바다가 온몸으로 들어왔다. 한참 사진을 찍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잠자리도 함께 춤추듯 날아올랐다. 내려올 때는 조금 헤매었고 탈진될 듯 힘들었다. 그러나 아침에 싸간 도시락과 고향슈퍼 평상에서 마시는 맥주 한잔은 꿀맛이었다. 그 힘으로 버틴 산행이었다. 돈목마을은 정말 예뻤고, 용일천이라는 커다란 우물이 있는 것을 보니 꽤 큰 마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이도에서 진리마을은 역사, 문화, 이야깃거리가 많아 할 얘기가 많지만, 다시 오고 싶은 곳은 돈목마을이다. 예리마을도 궁금해서 다음 일정으로 남겨두었다.


오후 도초로 오는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마터면 놓칠뻔한 배, 잃어버렸다 찾은 가방. 우여곡절 더욱더 많은 이야기는 다음으로 남겨둔다. 처음부터 함께 한 한숙샘은 ‘글짓는사람들’ 회원이고, 다음날 합류한 윤호샘은 ‘엮을편동호회’ 회원이다. 다들 목포환경운동연합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영상 MPG 회원이라 마음이 편했다. 여행 끌림까지 맞아 더없이 감사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잊지 못할 2박 3일 우이도 여행기를 마치려고 한다. 앗, 땡볕의 이런 이상기후는 쓰레기 문제, 환경오염 때문에 더 심각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한 사람,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의 문제인데,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문득 답답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은 꿈같았다.




<분꽃 만발한 풍성사구, 통제구역>



<돈목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풍성사구>


 


글쓴이: 김경애(시인)


시와 사람. 영화와 여행을 좋아한다. 마음을 움직이는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


목포작가회의 사무국장, 영상 MPG 회장, 목포환경운동연합 동호회 엮을편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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