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라다크에서 보내온 편지

관리자
발행일 2024-06-17 조회수 14

목포환경운동연합_<글짓는사람들>


 


#1. 라다크에서 보내온 편지


지금 나는 인도 여행 중이다. 다람살라 여행을 마치고 이틀 전에 라다크 레(Leh)로 넘어왔다.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고 스물한 분의 단체와 함께다.


고산증에 대한 염려 때문에 도착한 첫 이틀은 무조건 사람들이 호텔에서 충분히 쉬게 했다.


어제는 샨티 스투파, 레 왕궁, 남걀체모 곰파 등 레 주변만 천천히 돌아보고 일찍 호텔로 돌아와서 쉬었다.


배가 고플 즈음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식탁에 모여 식사를 해야 할 사람들이 모두 식당 한편의 둥그런 소파에 모여 앉아 있었다. 내가 나타나자 일제히 ‘주인공이 내려왔다’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 이 사람들이 내 생일을 어떻게 알았지? 아, 언니가 말을 했구나. 일행 중 한 분이 나와 친한 언니이고 그녀만 유일하게 내 생일을 알고 있었다. 언니는 이미 다람살라에서 내가 좋아하는 싱잉볼을 선물로 사주었다.


“잠깐만요~.”


얼떨떨해진 내가 그들의 노래를 제지했다.


“내 생일은 내일인데요.”


“알고 있어요. 요즘 축하는 ‘이브’에 하는 게 패션이에요.”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제가 이렇게 자다 말고 나오지 않았을 텐데…”


“그럼 가서 립스틱이라도 바르고 오세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냅다 방으로 내달려 빠르게 단장을 하고 다시 식당으로 갔다. 그동안 사람들은 식당 뒤쪽에 생일 축하 공간을 마련해두었다. 이 오지 레에서 어떻게 가능했을지 모를 커다란 케이크가 테이블에 올려져 있고 작은 앰프도 있었다.


마이크를 들고 사회를 보는 정례씨가 말했다.


“자, 이제부터 이한숙님의 60번째 생일축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레와 같은 환호와 함성이 작은 식당을 가득 메웠다. 식당에서 시중들던 로컬 스태프들도 박수와 미소를 보탰다. 감동 어린 케이크 커팅이 끝나자 사회자가 말했다.


“꽃을 구하기 어려워 꽃 대신 목걸이를 준비했습니다.”


블루 스톤으로 장식된 전통 문양의 아름다운 목걸이가 내 목에 걸렸다.


“이제 저희가 준비한 정식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정식 선물은 ‘실크 스카프’였다. 내가 좋아하는 쨍한 블루였다.


세상에 언제 이런 걸 다 준비한 것일까. 포장을 뜯어 스카프를 목에 맸다. 사람들은 또 일제히 소리쳤다.


“와 잘 어울린다. 예쁘다.”


그들이 준비한 건 케이크와 선물만이 아니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본격 축하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진짜 선물은 그때부터였다. 삼행시로 노래로 시로 편지로 춤으로, 많은 사람이 축하 공연을 펼쳐주었다. 제일 어린 열 살짜리 수안이까지 동참한 실로 감동 어린 이벤트였다.


축하공연이 끝나자 드디어 마이크가 내게로 왔다. 너무 벅차서 말이 횡설수설 두서가 없었다. 갑자기 얼떨결에 맞이한 말 그대로 서프라이즈 이벤트여서 하고픈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음날(진짜 내 생일날) 아침 일찍 일어나 긴 편지를 썼다. 아래는 그 축약본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국에서 맞이하는 생일, 없는 듯 쓸쓸하게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 여러분 덕분에 추억의 서랍 속에 영원히 간직하고픈, 잊지 못할 생일이 되었습니다.


이 오지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케이크를 앞에 두고 사랑으로 반짝이는 여러분의 눈이 일제히 저를 향한 것을 바라보았을 때의 기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런지요. 그 순간, 제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방 땅,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여러분은 제게 너무나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축하가 끝나고 방에 돌아와서도 여러분이 뜨겁게 뎁혀 놓은 제 심장의 열기는 시들지 않았습니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감싸 쥐고 앉아 있는데 제 볼에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일을 통해 좋은 사람들이 내게로 오고, 그들을 통해 기쁨을 얻는 지금의 제 삶이 얼마나 복되고 감사한지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깜짝파티로 저를 기쁘게 해주려고 모두 한마음으로 작당(?)하고 그 자리에 자발하여 모인 여러분이 저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제 인생, 60년의 세월을 갈피갈피 헤치고 들어가면 행복보다는 눈물이 더 많이 고여있습니다. 그 눈물이 이제는 보석이 되어 저를 빛나게 합니다. 저에게 눈물이 없었다면 저 자신에게만 갇혀 이렇게 길 위에 서는 행복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길 위에서 이렇게 멋진 분들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어제의 그 자리는 저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였지만 각자 자신의 눈물로 보석을 지어온 여러분의 삶을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했기를 바랍니다. 어디로 도망 안 가고 삶과 맞장 뜨며 여기까지 오신 여러분의 삶을 저 역시 축하하고 또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글쓴이: 이한숙 (Lois)_꿈의 여행을 기획하는 아티스트웨이 대표


선천적으로 여행을 좋아한다. 하늘만 빠꼼한 충청도 산골짜기에서 태어났다. 날마다 창공을 바라보며 넓은 세상을 꿈꿨다. 그 꿈이 결국 전 세계를 원하는 대로 누빌 수 있는 지금의 환경을 창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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